◈종합게시방◈/좋은 글
심금을 울리는 가슴아픈 사연
원짱 쉼터
2021. 5. 9. 21:54
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
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
"저를 이 섬에서 살게
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
"아니,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
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?"
그저 해본 소리는아닌 듯
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
K목사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
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
시작했습니다.
"언제 이야기입니까?"
"지금으로부터 40년전,
"......"
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
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."
"여기로 왔겠군요"
"그렇습니다."
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
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.
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
멀고도 힘든 길이었죠.
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
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.
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
바위를 들었지요.
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
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
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
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.
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
배를 타러 몰려든
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
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
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
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
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.
"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?
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
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
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
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
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
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
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
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
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
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
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
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
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
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.
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
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
얼마 전에 큰 아들이
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
그래서 그렇게 했지요.
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.
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
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
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
그 애들은 아무 말도
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.
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.
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
둘째, 세째, 네째--….
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
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
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
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,
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
다른 아홉명의 아이들에게는
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
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
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
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.
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
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
내 아들이
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.
그는 나를 껴안으며
"아버지를 한시도 잊은
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
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."
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
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
한번도 찾지 않은
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
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
그 이후로 모든 것을
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
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
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
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
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
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
그 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
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
나 또한 마음을 다해
목사님,
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
여기 음성 나환자촌에
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
그애와 며느리, 그리고 그
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
그들의 눈빛에는
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
한번도 발견하지 못한
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.
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
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
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
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

-옮겨온 글 -